미용의 역사는 종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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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인류에게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원시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인류는 기원 전 4000~5000년 전에 벌써 화장을 하였으며 머리장식과 빗을 사용하였는데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화장이 아니고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화장은 본래 피부의 건강이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인데 고대에는 그러한 측면에서 화장을 한 것이 아니고 종교 행사에 있어서 엄숙함을 나타내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장의 기법은 비록 초보적이지만 그때에도 벌써 개발되었으니 퍼머넌트는 이집트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고 고대 로마에서는 탈색·염색과 같은 화장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향료품이나 향수도 이러한 상황에서 더불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중세에 들어오면 비누가 만들어지고 18세기에는 화장수인 오데코롱이 개발되었다.

한국에서는 삼한시대에 남자들이 상투를 틀기 시작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얹은머리, 쪽머리, 증발머리 등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있었다. 또한 백제에는 혼인 후에 다른 머리 모양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으며 신라에는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머리 모양을 이용하였고 향수를 제조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화장이 짙어지고 화려한 치장을 하였으며 화장품 제조기술이 발달하여 화장합, 분을 담는 토기 분합과 향유병이 등장하였다.

고려시대가 되자 두발염색이 시작되었고 궁녀, 기생 중심의 짙은 화장법과 일반 가정집 여인들의 옅은 화장법이 발달하였다. 조선 초기에 들어서면서 피부 손질을 하기 시작하였고 머리 모양도 많이 바뀌게 된다. 조선 중엽에 분화장은 주로 신부화장에 사용하였고 연지와 곤지도 찍었다. 일본과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은 조선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화장법이 도입되었다. 특히 한일 합방 이후에는 외국에 유학을 한 여성들에 의해서 서양식 미용법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이것이 한국 현대미용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1920년대에 이숙종의 높은머리(타까머리), 김활란의 단발머리가 많은 여성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오엽주는 1933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화신미용실을 개원하였다.

해방 후에는 김상진이 현대미용학원을, 권정희가 정화고등기술학교의 문을 열어 현대 미용기술을 가르쳐 오늘날 우리나라 미용업의 토대를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적으로는 미용업과 이용업을 구분하고 있는데 실제에 있어서는 미용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이용업을 겸하고 있다. 특히 여성 위주로 발달한 미용 기술이 남성들에게도 환영을 받자 남자들의 이발만 하는 이용실은 점차 줄어들고 남자들의 이용을 겸하는 미용실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예전에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용사란 직업에도 많은 남성들이 종사하여 사실상 이용업과 미용업의 경계가 무너져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미용업이 제대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8년 제1차 미용사 자격시험이 실시되면서인데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미용사법이 만들어진 1961년부터이다.

*미용업: 손님의 얼굴·머리·피부등을 손질하여 손님의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영업

*이용업: 손님의 머리카락 또는 수염을 깎거나 다듬는 등의방법으로 손님의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