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군대의 등장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전히 전쟁 중이며 잠시간의 휴전기를 맞고 있는 국가적 상황도 그러하지만 그로 인해 모든 남자들은 군대를 가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사회 내에서 ‘군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큰 것이다.
그런데 군대는 어떻게 발생된 것일까. 정부에게 있어서 군대란 나라의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국가의 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등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인류 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나타난 것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라 부를 수 있는 사회의 이전 단계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 이전의 사회가 가지는 특징 두 가지는 그 사회가 혈연 중심의 씨족 집단이었다는 것과 권력이 그 집단 내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력의 등장이다. 사회가 혈연 중심이었다는 것은 사회학 학자들이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나 권력 발생의 근간을 찾는 데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였다.
쉽게 말해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의 기준은 혈연을 중심으로 했던 거주 형태가 사라지는 것과 합법적인 권력의 등장이다. 그 전에는 씨족이나 종족 내의 무력이 사회의 권력이 되었지만 국가 단계의 사회 내에서는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지배자가 갖는 권력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법이 출현한 사회부터가 국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국가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학계에서 유지되었으나 1980년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그리스와 같은 서양의 고대국가에는 위의 두 가지 조건이 모두 합당하지만 농업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나라들은 법이 출현한 사회라는 조건에만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농업사회에서는 고조선과 같은 국가가 출현한 이후에도 거주 형태가 씨족 마을 형태의 혈연 중심이었다. 서양의 고대 사회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이루어져 온 것이 문제였다. 서양 학자들에게 동양 사회의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발견하게 된 서양과 동양의 국가 탄생에 관련된 법칙의 한 가지 공통점은 결국 ‘법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근간이 되어 권력이 유지 된다’는 것이다. 즉 법의 등장이 국가의 특성을 말한다고 하겠다.
농기구의 발달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청동기의 발달은 농업 생산력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공동체의 모습은 그 전과 달리 모두가 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과 피 지배층으로 나누어 부와 권력을 지닌 지배자가 나머지를 통치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지배층은 노예를 만들어 다스렸으며 관료 조직 뿐만 아니라 감옥과 군대를 갖춘 국가를 만들어내었다. 국가 권력의 기준이 되는 법률 역시 발생되었다. 고대 국가는 합법적으로 무력을 가진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이었다.
씨족 사회 내에서도 잉여 재산은 존재하였기 때문에 서로가 침략하여 재산을 뺏는 과정이 있었다. 그 당시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고대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법률의 대부분이 생명과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전쟁을 위해 병사들이 모였을 때에도 이러한 목적을 위해 꾸려졌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전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전쟁들이 벌어졌다. 전쟁의 승패는 한 국가를 사라지게 만듦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리기도 하였다. 한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면 그 문화 역시 멸망되었으며 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그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군대는 실제 사유재산과 자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지배자들의 욕망에 의해 영토를 확장하거나 지배층들을 두텁게 만드는 데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국사나 세계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 은 나라에 세금을 내는 방식 중 하나로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서양 중세시대의 봉건제도로 기사가 자신의 영주를 위해 전쟁에 나서는 것이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세제도 중 군역을 가는 것이 그러하다. 조선시대에는 군대에 가는 대신에 군포를 내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한 폐단이 심각하였다. 나라의 통치자를 위해 만들어진 군대의 모습은 역사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씨족사회에는 다른 씨족의 공격이 있을 때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대항해야 했다. 이는 씨족의 안녕을 위한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사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현대 국가에서는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군사력이 필수로 여겨지고 있으며 각 나라에 맞는 군사훈련과 그에 관련된 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군대의 발전 과정
오늘날과 같은 군인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부터이다. 증기기관과 철도, 전신 등의 등장은 국민군대라는 거대 조직을 탄생시켰으며 전술 또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독일의 통일 전쟁에서 산업혁명의 기술적 진보가 군사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수의 군인을 정확한 시간에 옮기는 데에 열차가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물자들도 수송하는 데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전 지역에 펼쳐져 있는 열차 선로를 따라 빠른 이동이 가능하게 되자 군대는 군의 편성을 더욱 확실하게 하였다. 수십만의 현역과 예비군이 연대로 편성되고, 편성된 연대는 사단으로 또 군단으로 조직화되었다. 모든 부대는 무기를 소지하게 되었으며 전투 부대는 행군으로 이동하여 대기하고 있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열차는 국경 부근에 이들을 하차하게 만들었다.
전신은 철도 수송과 발을 맞추어 멀리에서도 부대의 이동과 집결을 통제하게끔 돕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나라 역시 이러한 열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철로를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의 전투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차이는 바로 시스템에 있었다. 정확한 시간에 기차를 도착하게 하고 짐을 내리며 정해진 시간에 다시 기차가 출발하게끔 하는 일은 철저한 계산 아래에 가능한 것이었다. 독일은 전투를 이끄는 지휘관들을 동일한 학교에서 교육시켰으며 같은 과정 아래에서 똑같은 군사적 원리를 배웠던 탓에 전쟁 시 각자 다른 지역에서 전투를 하더라도 같은 똑같은 방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합리적이면서도 신속하고 또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한 지휘관들의 동일한 판단은 군사를 통솔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있어서 견인차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후, 독일이 보여주었던 이러한 전쟁 방법은 모든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철도망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였으며 지속적인 예행연습을 거듭하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24시간으로 철로를 지켜야만 했으며 이러한 경계 태세는 오히려 일촉즉발의 전쟁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철도를 움직이고 군인을 옮기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 여기에 대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순식간에 대규모 병력의 침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도와 전신의 발달은 유럽 각국의 대규모 군사들의 움직임을 체계화 시켰다.
산업혁명은 이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군대를 현대화시켰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의료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유럽 인구를 증가 시켰다. 187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유럽의 인구는 10년에 10퍼센트씩 증가하였다. 이러한 인구 증가와 산업기술의 발달은 군수 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나라 간의 무기경쟁은 가속화 되었다. 철도 건설과 군사력 경쟁이 지속되었고 독일식 의무병역제도가 일반적으로 채택되었다.
무기 기술의 발달로 기관총이 등장하였는데 기관총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병사들을 살상하였다. 또한 이와 더불어 다양한 신무기들이 개발되었는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력의 대포들도 개발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은 철도망 수송과 연계한 국가 총동원의 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국가의 전쟁계획 또한 더욱 정밀해질 수 있게끔 하였다. 이후 전쟁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화 되었다.
전쟁과 무기의 역사
전쟁과 군인의 역사는 무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성격과 사용된 무기를 기준으로 할 때 4가지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원시시대부터 화약이 발명될 때까지이다. 이 시대의 전투는 실지 전쟁을 치루는 사람들의 몸이 중심이었으며 무기는 이를 보완하는 데에 그쳤다. 칼과 창, 도끼 등은 근거리 전투의 공격무기였으며 원거리용으로는 투창과 활이 있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투구와 방패를 이용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화약의 발명 후 19세기 말까지였다. 화약이 발명되며 이를 바탕으로 총포류가 개발되었다. 14세기부터 15세기에 걸친 백년전쟁에서는 총포를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지상전투 무기의 지속적인 개발로 19세기에는 근대식 총포가 완성되었고, 해상 함정에서도 이러한 총포가 사용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의 말기까지로 볼 수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기존의 전쟁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전쟁의 범위도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그로 인해 무기의 발달도 급진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비행기와 비행선이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었고 독가스를 이용한 화학무기, 잠수함 등이 등장했다.
1차 대전이 끝나자 정밀기계, 제강 등의 공업기술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이는 새로운 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대함거포, 기관총, 무선장비 등이 발달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는 레이더, 소나 등과 같은 전자무기와 미사일이 등장했다.
마지막의 네 번째 시기는 2차 대전 말의 원자폭탄부터 지금까지이다. 전략무기가 출현하고 항공기가 급진적으로 발달되었다. 특히 핵무기는 핵분열방식에서 핵융합방식으로 변모하면서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 미사일이 발달되어 서로 간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데 까지 이르렀다. 항공기 역시 초음속으로 비행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무기들을 탑재하여 공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자전과 동시에 인공위성을 활용한 우주전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