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균연봉: 4,300만원 > 직업 만족도: 74% > 분야: IT 및 인터넷 > 취향: 나는 새로운 기술을 좋아해 |
평균적으로 연봉 약 4,300만원을 받으며, 많이 버는 사람은 6,00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합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아닌 방대한 양의 자료가 축적된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컴퓨터시스템은 전문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를 전담할 운영자가 필요합니다. 정보시스템운영자는 시스템 전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관리하고 장애요인을 처리합니다. 컴퓨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며 각종 자료의 손실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데이터 백업과 예방점검을 수행합니다. 시스템 사용자의 등록 관리, 사용 권한 부여, 불편사항 접수 및 개선도 이들이 담당합니다.
새로운 주변장치를 설치하고 테스트하며 운영시스템 및 드라이브에 필요한 조정을 합니다. 이들은 시스템 사용자들에 대한 기술적인 지원업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사용자들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하며, 프린팅,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래밍 언어, 전자메일 및 운영시스템을 포함한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사용에 관한 고객의 문의에 응답해줍니다. 컴퓨터시스템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장애가 발생하였을 때는 직접 문제를 해결하거나 협력업체에 기술지원을 의뢰하여 신속히 시스템이 복구되도록 합니다.
서버를 중심으로 구성된 정보시스템의 상태를 관리하고 모니터링하여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서버운영관리자, 기업체나 기관에서 사용되는 전산 네트워크 자원을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 하고 운영하는 네트워크운영관리자 역시 정보시스템운영자입니다. 컴퓨터 관련 주변장치를 설치하고, 기업의 인트라넷 변경 등과 같은 시스템을 관리하며 새로운 운용시스템 도입과 모니터링, 점검 및 문제해결 등을 수행하는 IT기술지원전문가도 이에 포함됩니다.
정보시스템운영자로 일하려면 각종 컴퓨터 운영체제(OS)와 OS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 설치와 운영, 보안, 데이터베이스 등 시스템운영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전문대학 이상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거나 사설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컴퓨터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며, 각종 자료의 손실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백업해야 하므로 분석적이고, 적응성 및 융통성이 높은 성격인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전산, 기술 분석 등의 능력이 요구되며, 컴퓨터와 전자공학, 통신 공학과 기술 등의 지식을 갖춘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을 돕고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24시간 교대로 근무합니다. 이들이 일하는 전산실은 컴퓨터시스템의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며, 먼지도 거의 없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시스템운영자는 IT기반 사회의 원활한 운영과 문제 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모바일 통신 기기 확대, 유무선 네트워크 연계, 산업의 IT화 등으로 서버, 네트워크 등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인력의 역할은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e-비지니스가 확대되고 스마트폰 사용자 확대, 사회적 미디어 활성화, 각종 기기의 자동화·디지털화, 사물인터넷(IOT)의 개발 및 기존 시스템과의 연결망 확대로 정보시스템의 규모가 점점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보시스템의 고장이나 장애는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각 기관에서는 24시간 정보시스템을 관리하는 등 품질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은 정보시스템운영자의 고용 증가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편 컴퓨터 시스템 개발의 발전으로 안정성이 높아지고 있고, 시스템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되는 것은 정보시스템운영자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나다. 또한 규모가 큰 기관에서는 자체 인력을 채용하지만 최근 들어 별도의 통합 데이터센터를 통해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고 시스템통합(SI)업체에 외부용역을 주거나 관련 업체로부터 인력 파견을 받는 등 전반적으로 근무 조건이 열악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인터넷상의 서버를 통하여 데이터를 저장하고,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을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일시에 해결하게 된 것은 특정 기관 내 상주하는 정보시스템운영 인력의 수요를 감소시키고 외주화(outsourcing)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향후 5년간 정보시스템운영자의 고용은 다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장기 인력수급 수정전망 2015~2025」(한국고용정보원, 2016)에 따르면, 정보시스템운영자는 2015년 약 74천 명에서 2025년 약 83천 명으로 향후 10년간 약 9천 3백 명(연평균 1.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정보시스템운영자가 근무할 것으로 예상되는 컴퓨터시설관리업 사업체는 350개소로 2008년 216개소에 비해 62% 증가하였고, 관련 산업의 종사자는 2008년 3,625명에서 2014년 6,206명으로 71.2%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윈도우, 유닉스, 리눅스 등 각종 컴퓨터 운영체제(OS)와 OS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 설치와 운영, 보안, 데이터베이스 등 시스템 운영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전문대학 이상 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거나 사설 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관련 학과
공학교육과 , 산업공학과 , 응용소프트웨어공학과 , 전자공학과 , 정보·통신공학과 , 제어계측공학과 , 컴퓨터공학과, 정보처리학과, 전자계산과, 전산공학과, 산업공학과 등
■ 관련 자격
■ 경력개발
SI(시스템통합)업체, 기업체, 공공기관, 대학교 등의 전산실, 전산시스템을 위탁받아 통합 운영하는 데이터센터 등에서 근무합니다. 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관련 경력자를 우대하여 채용하고 있습니다. 경력을 쌓은 후에는 정보기술컨설턴트, 데이터베이스관리자, 컴퓨터시스템설계분석가, 네트워크 시스템분석가 및 개발자 등으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자료: 나의 직업 시리즈 도서, 워크넷(www.work.go.kr) 참조
> 웹사이트
> 도서 |
통신 및 네트워크 기술자
네트워크 아키텍트
컴퓨터 엔지니어
디지털 접근성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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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가 단순하지만 재미있다.
■ 기술직이기 때문에 나이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 창업에 큰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경력과 실력만 쌓으면 자신만의 가게를 쉽게 오픈할 수 있다.
■ 아세톤을 비롯한 화학 약품을 지속적으로 가까이 하기 때문에 호흡기 계통의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 장시간 웅크린 상태로 일하기 때문에 근골격계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을 상대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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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취업하는 경우에는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브랜드샵에 취업하는 경우와 경력을 갖춘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개인샵에 취업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브랜드샵 같은 경우에는 체계적인 교육이 진행되는 대신 경력을 쌓으면서 승진을 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개인샵 같은 경우에는 브랜드샵 보다 체계적인 교육이 진행되지는 않지만 승진이 빨라 보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취업하는 곳은 단일 전문 메이크업샵 보다는 토탈미용샵이 많은데 여기서는 헤어미용, 메이크업, 네일아트까지 토탈로 진행된다. 그래서 메이크업 일을 주로 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헤어미용이나 네일아트까지 조금씩 다루게 된다.
이와 같은 미용 전문샵이 아니라도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에는 예식장, 미용실, 화장품회사, 방송국, 영화사 및 공연업체, 이벤트기획사 등이 있다.
이벤트기획사나 연예기획사에서 일하게 되면 소속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담당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이력서로 심사를 거쳐 취업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전국적으로 개최되는 메이크업대회에 참가하여 입상할 경우 회사 측의 제의로 취업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메이크업 관련 업체에 들어가게 되면 일단은 기존 숙련된 아티스트의 보조업무를 주로 하게 되며 경력을 쌓은 후 아티스트로 일을 하게 된다. 이후 경험과 노하우를 쌓으면 메이크업 강사로 활동하거나 본인이 직접 전문샵을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메이크업 전문샵에서는 어시스트, 아티스트, 실장으로 직급이 나누어지며 화장품 회사에 취업하였을 경우에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으로 나누어진다.
화장품 업체에 취업하여 일할 경우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으면 메이크업 시연회, 메이크업 강좌 또는 쇼 등을 담당하는 브랜드 프로모션팀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거나 수석 아티스트로 일하기도 한다.
전문샵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시간과 근무 조건 등이 헤어미용의 경우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전문기술직이기 때문에 회사에 취업하지 않으면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자신만의 전문샵을 운영할 수도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메이크업 전문샵이나 기획사, 방송국이나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 등에서 근무를 하여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메이크업 역시 일반 미용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 배우거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는 실제 미용업계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일하는 것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
보통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면 대부분 영화, 포토, 웨딩, 패션 계열이나 공연 같은 분야에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각각의 화장법과 테크닉 그리고 의상에 맞는 자유 화장 쪽으로 다재다능하게 일을 맡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크업 관련 전문샵에서 메이크업 테크닉을 비롯한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은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일을 할 때 신경을 써야 하는 사항들이 몇 가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날짜와 시간이다. 몇 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메이크업을 할 것인지를 고객과 상의해야 한다. 보통 공연 직전에 메이크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정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침 일찍 메이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장소이다. 스튜디오인지 야외인지, 또 촬영지까지 왕복 시간은 얼마나 걸릴 지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야외에서 진행할 경우 메이크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설치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확인하여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 번째는 메이크업 받을 인원이 몇 명인지, 그리고 메이크업 체인지가 몇 번이나 있는 지를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인원과 횟수에 따라 받아야 하는 금액이 정해지기 때문에 미리 협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콘셉트이다. 미리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콘셉트를 잡아야 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모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두 지치게 된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미지만 정확하다면 큰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다.
전문 메이크업 샵의 경우 혼자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을 고용하여 팀을 관리하는 팀장을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방송이나 연극, 영화 분장사 및 특수 분장사의 경우 촬영계획에 따라 근무시간이 매우 불규칙한 편이다. 난이도가 높은 분장의 경우 며칠씩 밤을 새워 일할 때도 있고, 촬영 당일에는 현장에 나가 일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작업상황이나 촬영계획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The post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어떻게 일할까? first appeared on 꿈도서관.]]>■ 사회적으로 괜찮은 지위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헤어미용은 거의 모든 여성들이 생활의 일부로서 하지만 피부 미용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피부에 신경 쓸 정도가 되어 샵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어느 정도 사회적 활동을 하거나 지위를 갖춘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맞이하여 피부관리를 하게 되면 다양한 인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해 나갈 수 있어서 사회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자신만의 업무 영역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피부 미용은 과학적 지식과 미용이 결합된 응용 산업분야로서 비전문가나 전문가라 하더라도 직접 시술을 하지 않을 경우 일반적이거나 상식적 측면에서의 지시나 간섭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작업만큼은 자신의 소신대로 처리할 수 있어서 심리적 압박감이 적다. 사실, 피부 미용사는 경력이 많을수록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피부 미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기의 도움 없이 거의 미용사 스스로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상태에 따라 간단한 도구와 약품을 휴대하고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미용실을 벗어나서도 작업을 할 수 있다.
■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트러블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나아가자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데 의료적 해결보다는 대체의학 쪽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피부 미용은 사회 진출과 전문직을 갖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환영 받는 직업이 될 것이다.
■ 성실하게 노력을 한다면 누구든지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다. 피부 미용은 고객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에서 그 결과가 좋다면 자연스럽게 보상을 하게 된다. 특히 원만한 대인관계를 꾸려 나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적은 투자로 막대한 경제적 수입을 가질 수도 있다.
피부미용사 직업의 특징다른 전문 직종에 비해 근무시간, 휴일 수, 임금, 복리 후생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은 열악하지만 평생 직업으로써 큰 위험과 부담이 없는 직종이며 결혼 후에도 육아에 맞게 시간을 조절하면서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물리적 힘이 필요할 때도 있어 건강한 체력이 필요 하다는 것이 헤어미용과 다른 점이다. |
■ 피부마사지와 같은 작업은 어느 정도 힘이 사용되는 일이라서 체력이 약한 사람의 경우에는 많이 피곤할 수가 있다. 그러나 스포츠마사지나 치료마사지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물리적 힘은 필요치 않다. 단지 반복되는 연속 동작으로 인한 피곤함이 여성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 작업하는 자세가 불편한 경우가 많아 근골격계의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 단조로운 작업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동네 조그만 샵의 경우에는 하루 종일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퇴근시간이 늦고 주말 근무가 많아 여성들일 경우에 가정생활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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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직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일 할 수 있다. 특히 고객의 취향에 따른 개별적 서비스를 본질로 하는 미용 기술이다 보니 다른 전문가들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실력만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직장과 다르게 정년퇴직이라는 것이 없어 자신의 건강만 괜찮다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고, 미용도구만 갖추면 어디든지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이나 다른 특수한 환경에서도 개의치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다.
■ 패션이 끊임없이 발전·반복되기 때문에 헤어 디자이너 역시 계속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한류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져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어느 때보다 높아 한국의 미용사가 세계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또한 매력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미적 감각을 살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해 볼 수 있으며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 자신만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인간성으로 사회에서 비교적 정직하게 평가받고 대우 받을 수 있는 직업이다. 미용은 개인의 대외적 이미지와 직결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좋고 싫음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가 어느 상품보다도 빠르고 정확하다. 그래서 능력있고 성실한 미용사들은 금방 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광고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찾아오게 된다.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취업일 경우에는 월급이나 근무 조건이 상향 조정될 것이고 자영업일 경우에는 수익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 미용은 개별적 서비스가 그 본질이기 때문에 표준화된 업무 지침이 없어 손님마다 그 손님의 요구 사항을 듣고 거기에 맞게 작업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손님의 취향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수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경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한 손님의 성격이 까다로워 기술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항까지 무리하게 요구하게 되면 스트레스 차원을 넘어서는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되기도 한다.
■ 화학 약품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어서 호흡기나 피부 계통의 여러 가지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미용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퍼머약이나 염색약, 또는 중화제 등의 화학약품은 비록 안전하지만 미용사의 입장에서는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미용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대다수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나이에 미용일을 시작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생리통이나 생리주기, 호흡기계 질환 등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네일아트와 달리 헤어미용은 대개의 경우 미용사가 서서 작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 하지정맥류, 관절통 또는 허리디스크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미용사들은 휴식시간에 수시로 몸을 스트레칭하는 습관을 길러야 업무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 단순 반복 작업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동네 조그만 헤어샵의 경우에는 하루 종일 거의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럴 때 미용사는 심리적 갈등을 많이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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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미용실의 직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조 -> 인턴 -> 미용사 -> 디자이너 -> 실장 or 원장
일반적으로 미용사의 직급은 보조, 인턴, 미용사 그리고 디자이너 네 단계로 구분된다.
보조란 미용실에서 다른 미용사들의 일을 돕는 사람으로 고객의 머리 감기기에서 부터 바닥청소, 잔심부름에 이르기까지 온갖 허드레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다. 이 시기에는 직접 시술은 허용되지 않으며 철저하게 상급자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보조생활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턴’이 되면 처음으로 손님을 접하지만 미용사나 디자이너가 작업 범위를 세분해서 정해준다. 펌의 롤러를 세팅하는 일과 같이 기술력이 디자이너와 차이가 크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게 1년 정도 지나면 미용사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며, 견습기간은 끝났지만 아직 독립 기술자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쉬운 커트와 학생 커트, 정형화된 파마는 마무리까지 직접 하게 된다.
2~3년 정도의 미용사 생활을 거치고 난 후에 비로소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가 된다. 이는 헤어 디자이너 쪽에서는 최고의 단계이다. 이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상하고 완성시킬 수 있게 된다. 직접 스타일링을 구상하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도 하지만, 영역별 전문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염색 전문가, 모발관리 전문가, 커트 전문가가 그러한 예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경력이나 직무내용에 따라 단계가 나누어지지만 명칭이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보조와 인턴을 ‘스텝’이라 하여 청소, 샴푸를 하거나 미용사나 디자이너가 정해주는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원장’, ‘실장’은 자신이 미용실을 개업하여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여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헤어샵의 경우에는 1년 중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휴일이나 일요일도 없이 거의 매일 영업을 하는데 고객들이 자신들이 쉬는 휴일이나 일요일에 헤어샵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미용실 직원들은 평일에 교대로 쉰다.
영업시간은 보통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여 밤 8시쯤 끝나는데 주말 영업시간은 평일보다 1시간 정도 긴 밤 9시에 끝난다. 어떤 매장의 경우에는 오전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도 있다. 평균적으로 볼 때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한다고 보면 된다. 이는 자영업의 경우와 거의 같다.
헤어 디자이너는 보통 오전 10시에 출근하지만 스텝의 경우엔 1시간 빠른 9시나 9시 30분 출근하여 청소와 정리정돈을 한다.
스텝은 하루 일과 중에 수시로 미용실 바닥의 취업 시 일하는 형태와 근무시간 머리카락을 치우거나 삼푸실을 정리정돈한다.
그리고 미용실에 근무하는 모든 스텝부터 디자이너까지 개성 있는 스타일과 근무복장을 함으로써 방문하는 고객에게 시각적인 서비스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미용실에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조회를 하는데 이때 점장으로부터 주요 일정에 대한 보고를 듣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조회가 끝나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데 견습생인 스텝은 헤어샵에 찾아온 고객을 디자이너가 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을 맡아서 한다. 일단 디자이너에게 배정된 의자에 고객이 앉으면, 스텝은 고객에게 잡지나 차를 권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디자이너를 도와 그의 작업을 보조하게 된다.
‘스텝’ 2명당 1명의 ‘담당 디자이너’가 배치되는데 스텝들은 그 디자이너에게서 주요한 지시와 명령을 받는다. 그래서 스텝과 담당 디자이너 사이의 업무관계는 전통적인 도제관계와 유사하며 실제로 스텝들은 디자이너에게서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게 된다.
또한 주요 헤어샵들은 독자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교육훈련을 하는데 헤어 디자이너와 스텝 모두 정기적으로 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자체 강사나 수석디자이너가 직접 교육을 담당하는데 직원들은 이런 자가연수를 통하여 기술을 연마하고 지도를 받으면서 헤어미용사로서 경력을 쌓아간다.
스텝들에 대한 교육은 실기 위주로 진행된다. 프랜차이즈 샵일 경우에는 가까운 인근 지점의 스텝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자체 연수교육은 꼭 스텝들만 받는 것은 아니다. 미용사나 디자이너 역시 보다 높은 레벨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육에 동참하여 스스로의 내공을 쌓아간다.
교육은 실기를 겸한 강의와 테스트로 이루어지며 시험에 통과하여야 상급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즉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실습과 교육을 거쳐 보조, 인턴, 미용사로 승진하며 최종적으로 헤어디자이너가 된다.
헤어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역량으로 헤어미용을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며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다른 견습생을 지도할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미용사가 되기 위한 교육은 어디에서 받을까?(고등학교, 대학교, 해외, 학원)
미용사(헤어 디자이너) 자격증 시험The post 헤어 미용사로 취업하면 어떤 일을 할까? first appeared on 꿈도서관.]]>
> 평균연봉 : 3,500만원 > 직업 만족도 : 71.7% > 분야 : 예술 및 문화 > 취향 : 나는 언어를 좋아한다. |
평균적으로 연봉 약 3,500만원을 받으며, 많이 버는 사람은 4,50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합니다. 경력이나 근무하는 업체 또는 프리랜서인지에 따라 임금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통번역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가는 의사소통이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특정 언어로 작성된 문서, 보고서 또는 전문 서적이나 영상물 등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합니다. 문학작품(문학번역), 영상물(영상번역), 전문서류(전문서류번역)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 하며, 자동차산업, 전자산업 등으로 세분된 산업영역에서 전문적인 번역 업무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문학번역에는 외국어로 된 소설, 시, 희곡, 수필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작품들의 번역 뿐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문헌 번역도 포함됩니다. 영상번역은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만화, 뉴스 등 모든 장르의 영상예술에 쓰인 외국어를 해당 언어로 바꾸어 다시 녹음(더빙)하거나 자막용으로 번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문서류번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 학술 서적, 비즈니스 서류, 기획, 수출입 관련 무역서신, 제품설명서 등 각종 계약서 및 서류 등의 번역입니다.
번역가는 문화, 정보, 이야기 등을 적절하게 해석하여 다른 언어로 사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번역 의뢰가 들어오면 번역할 내용을 파악하고 의뢰자와의 협의를 거친 후 작업을 시작합니다. 외국 문학작품이나 영상물의 경우 해당 국가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 등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정확한 번역이 가능합니다. 전문서적의 경우에는 원문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사전이나 참고자료를 활용하여 번역문을 작성합니다.
정해진 원고 외에도 편집자를 배려하기 위해 주석을 달기도 합니다. 번역이 완료되면 해당 분야 전문가나 번역의뢰 업체를 통해 전문용어에 대한 감수를 받고 원문과의 대조를 통해 누락되거나 잘못 번역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번역된 내용에 대한 수정과 보완, 교정 작업을 거쳐 표현을 이해하기 쉽고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반복하여 최종 번역문을 완성합니다.
번역가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 중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합니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는 상대 국가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 하며,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는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 비유법과 구어체 등의 표현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번역가는 모국어와 적어도 두 가지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사소통이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며 특정 분야를 번역할 때는 전문용어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글을 정확히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국어문법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어휘력이 풍부해야 하고 언어에 대한 감각과 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표현력, 문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번역은 우리나라와 국제 정치, 문화, 경제 뉴스에 대한 큰 지적 호기심과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기술, 과학 또는 법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면 다양한 번역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번역 작업의 품질 및 번역 속도를 향상시키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번역에 대한 보수를받을 때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 관련 학과: 국어·국문학과, 영미어·영문학과, 일본어·문학과, 중국어·문학과, 프랑스어·문학과 등 어문계열 학과, 국제지역학과, 번역학과(통역번역전문대학원) 등
■ 관련 자격: 외국어 번역능력인정(번영능력인정시험/TCT) 1급/2급/3급((사)한국번역가협회), 외국어 번역행정사(행정자치부)
번역가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자신의 집, 혹은 번역전문회사의 사무실 내에서 번역하기 때문에 별도의 근무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번역전문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거나 이곳에서 별도 과업을 계약하고 번역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상번역 분야의 경우 방송사에 프리랜서로 고용되어 외화,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물을 번역하며, 문학번역의 경우도 출판사에서 적합한 프리랜서 번역가를 섭외하여 번역을 의뢰합니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 일정 기간 소속되어 각종 업무 관련 문서 및 서류를 전문적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채용 과정에서는 해외체류 경험이 있는 자를 우대하고 공인 외국어 성적표 제출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번역 작업을 알선하는 에이전시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업무를 맡거나 교육기관의 추천을 받아 번역을 의뢰받기도 합니다.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 그간의 번역 경력을 바탕으로 출판사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는 편입니다. 이때 번역 경험 및 경력이 있는 문학작가가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특별한 승진 체계는 없습니다. 다만, 번역가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으면 더 높은 번역료를 받게 되고 많은 일을 의뢰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번역가로서 경력을 쌓은 후에는 독자적으로 번역회사를 창업하기도 하며, 번역가 알선 에이전시나 번역 관련 사설학원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향후 5년간 번역가의 고용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교류가 증가하면서 각국의 문학작품이나 영상물 등 다양한 자료들의 번역 업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송 분야의 경우, 방송환경의 다매체 및 다채널화로 외국 프로그램을 송출하기 위한 수입물이 늘고,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만화, 교육 등 영상물이 꾸준히 제작되는 점은 당분간 이들의 일자리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전망입니다.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번역 및 통역서비스업 사업체 수는 및 종사자 수는 약간의 증감은 있지만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번역 및 통역서비스업이 기업화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인력의 운영 및 관리가 전문화, 체계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기업의 경우, 외국계 기업의 국내 진출 및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등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번역가의 일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다만, 글로벌 인재 채용 트렌드 강화 등의 영향으로 번역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실무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실무에서 ‘구글’ 같은 번역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번역 업무를 외부에 의뢰하는 일은 점차 줄어드는 점은 번역가의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동번역 서비스가 확대·고도화되면서 번역가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신 문학작품 및 전문서적 등 고도의 번역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에 대한 인력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학작품 번역의 경우, 일반 번역과는 달리 매우 전문적인 번역수준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동번역이나 인공지능 기술과는 별개로 꾸준한 수요가 예상됩니다.
이처럼 국제교류의 증가는 번역가의 업무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글로벌 인재 양성에 영향을 미쳐 번역가의 업무를 감소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동번역서비스의 확대 및 고도화는 단순 번역 업무를 감소시키는 대신 고도의 전문적인 번역 영역을 구축하게 함으로써 번역가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편, 철저히 능력 위주로 평가받는 업무의 특성상 전문적인 번역능력과 지식을 고루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과학, 문화, 예술, 문학 등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개척해 특정 분야의 경력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는 경력개발 태도가 더욱 요구될 것으로 보입니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별도의 교육이나 훈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국어 실력이 기본이기 때문에 통역번역전문대학원이나 번역전문 교육기관에서 번역가로서 필요한 실무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고 진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년 과정의 전문대학원 번역학과에서는 1개 이상의 외국어를 선택하여 해당 외국어를 완벽하게 쓰고 번역하기 위한 다양한 연습을 합니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이해력과 구사력도 뛰어나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말의 문장 교육도 집중적으로 실시합니다.
문학작품 번역의 경우 대학교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으며 해당국가의 다양한 문화를 알아야 하는 번역가의 특성상 오랜 해외체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번역 업무를 하기도 합니다. 정보통신, 경제·경영 등의 특정분야를 중심으로 번역할 때는 전문용어의 이해가 필요하므로 관련학과 전공자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사설 교육기관의 경우 대개 3~6개월의 양성과정을 개설해 자체적으로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한해 회원으로 가입시킨 후 번역 업무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자료: 워크넷(www.work.go.kr) 참조
<웹사이트>
<도서> |
모든 건설 작업의 시작에는 계약 체결과 연구 수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작업의 크기를 지정하고 세부 계획을 작성하고 시공 방법을 정의하고 작업 비용을 수량화하는 프로젝트 관리자, 설계 엔지니어 및 기술자의 영역입니다. 환경 표준은 기술 연구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근로자가 대다수입니다. 그들은 주요 작업(조적, 거푸집, 골조 등)과 구조물이 설치되면 완료되는 마무리 작업(난방, 전기, 배관 등)을 나눕니다.
공공 작업은 또한 도로 및 고속도로의 건설 및 유지 관리, 공공 조명 설치 등을 위해 작업 팀에 의존합니다. 팀의 수장에서 현장 관리자와 작업 감독이 활동을 조정합니다. 그들은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보장하고 품질 및 안전 규칙을 준수하도록 합니다.
145만 개의 일자리(2021년 기준)가 있는 건설업은 대한민국의 주요 고용주 중 하나입니다. 직원이 10명 미만인 기업의 96%로 구성된 이 부문에는 중소기업, 대기업(예: Eiffage 또는 Vinci) 및 디자인 사무소도 포함됩니다.
도로, 파이프, 공공 조명 등 공공사업의 주계약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입니다. 2020년(코로나19) 보건 위기로 도산과 채용 감소가 발생했지만 경제 상황은 여전히 우호적이다. (광역 서울 건설 현장, 건물 에너지 리노베이션 계획 등), 현재 증가하고 있는 건물 및 공공 사업에도 여전히 채용 전망이 좋습니다.
건축 부문의 수요는 후보자가 부족한 작업 감독자 및 현장 관리자, 석공, 전기 기사, 목수, 지붕공 및 폼 연결기의 위치와 관련되며 난방 엔지니어, 배관공 및 목수-설치자 또한 수요가 많습니다. .
공공 사업 측면에서 도시 도로 건설업체, 기계 운영자, 전기 네트워크 및 통신 네트워크 설치업체가 인기 있는 프로필입니다. 요구 사항은 관리 직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팀 리더, 현장 관리자, 작업 감독자. 마지막으로, 디지털 도구와 3D 모델링의 등장으로 디지털 모델 전문가(또는 BIM 관리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입니다.
고용주는 동기 부여 및 기술적 기술 외에도 “노하우“와 관련된 자질(적응성, 반응성, 주도성, 팀워크 취향 등)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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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전통적인 옷과 신발을 만들던 디자이너들이 있었다면,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디자이너 역사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노라노는 패션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한국에서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한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왜곤 테크니컬 컬리지’를 졸업한 비교적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이었다. 귀국한 그녀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서울 명동에 ‘노라 노의 집’을 열어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줄리앙 아트 스쿨’에서 다시 공부를 이어나갔고,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
이 ‘최초의 패션쇼’는 100% 대한민국 기술 사용과 처음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생산된 모직 원단 사용 등으로도 의미가 컸다.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의상상을 수상했으며, 1965년 하와이에서 최초로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며 브랜드 수출을 시작하기도 했다.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고, 이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노라노의 인생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패션의 최초라고 붙일 수 있는 모든 사건과 함께였다.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최초의 패션쇼 개최자였으며, 최초로 미국 백화점에 입점한 국내 디자이너이기도 했고, <보그> 의 잡지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샤넬이 여성복의 일대 혁명을 일으키며 실용성과 활동성을 강조한 검은 색을 유행시켰는데 노라노 역시 같은 이유로 검은 복장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즉 바쁠 때 색깔을 통일하면 신경을 덜 써도 되고, 특히 검은 색은 여성의 자립과 독립,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색이라고 그녀는 굳건히 믿었기 때문이다.
노라노가 패션 디자이너로서 살아온 역사는 한국의 여성 권익 신장과 맞닿아 있다. 서양 복식인 양장이 허영과 사치로 생각되던 그 시절, 노라노는 여성복을 표준화해 누구든 쉽게 양장점에 들러 자신에게 맞는 옷을 살 수 있도록 사회 풍토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또한 해방 직후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는데,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긴 여성을 더욱 당당하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그는 맞춤복, 양장복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 입어도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옷을 만들었던 것이다.
The post 대한민국 패션의 최초 디자이너 노라노 first appeared on 꿈도서관.]]>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말만 보면 현대에 와서 생긴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옷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런 직업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임금의 의복을 만들거나, 궁중에 사는 궁인들의 의상을 공급하는 관료가 있었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날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은 ‘상의원’이라고 불렸는데, 임금의 옷을 만들기도 하고 재화, 금은보화 등의 물품을 궁에 납품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조선 태조 때 설치된 뒤 그 후에 상의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05년에는 상방사라는 호칭으로 다시 바뀌었다. 상의원의 일들을 보면 금실을 짜 넣는 재금장과 탕건을 제작하는 탕건장 등으로 나누어 마치 오늘날처럼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바느질로 옷을 짓던 장인을 부르던 명칭도 존재한다. 바로 침선장이다. 요즘은 장인으로 특별하게 지정해 그들의 기술력과 정신을 계승하고 보호하려 하지만, 전통 사회 안에서 옷 만드는 일 대부분 여성들이 가족과 자신들을 위한 살림살이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왕실, 또는 사대부 등의 특수 계층들은 자신들이 직접 옷을 짓지 않고 솜씨가 뛰어난 장인을 고용해 옷을 지어입곤 했다. 궁중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상의원이 그 업무를 담당했고, 부족한 일손을 침선비라 하는 이들에게 돕도록 했다. 대체적으로 바느질에는 홈질, 박음질, 감침질, 상침뜨기, 휘갑치기, 사뜨기, 시침질, 공고르기, 솔기질 등이 있는데 이음새나 옷감의 종류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기술이 천차만별이라서 이들 장인의 역할은 까다로운 손님을 만날수록 더욱 빛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이들이 장인으로 지정된 특수한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침선장은 모두 양민과 천민 출신의 남성 장인이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상의원에 소속됐던 침선장만 68개 분야, 597명이나 됐다는 기록이 경국대전에 전해진다. 침선비는 바느질을 전담하는 침방과 수놓기를 전담하는 수방 소속 궁궐 나인을 뜻했다. 이들 중 누가 실제 의상디자인을 맡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침선장에 대한 사료는 그 숫자 정도만 남아있는 데 비해 침선비에 대해선 숫자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그 역할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침선비는 7, 8세 나인 가운데 손재주가 야무지고 꼼꼼한 성격의 사람을 가려 뽑아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업무 강도가 높아 손가락에는 바늘에 찔린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지만, 바느질을 못하면 그 책임을 물어 투옥되기도 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직업이었으니 어린 시절부터 그 고달픔이 심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심지어 침선비는 평소 옷을 짓다가도 궁중 연회가 열리면 춤과 노래도 담당했다. 침선비의 다른 이름이 ‘상방(상의원의 다른 이름)기생’이었던 이유가 여기에서 연유한다.
옷을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옷 세탁 역시 침선비의 몫이었다. 왕실의 옷은 비단 소재가 많아 세탁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소함을 중시한 중종과 영조, 정조 같은 임금은 제례복과 곤룡포 같은 옷 이외의 옷은 모시나 명주로 만들어 세탁이 가능하도록 하여 백성들의 진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 당시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색깔은 보라색과 빨간색이었다. 그런데 보라색 염료인 자초는 그 가격이 근당 쌀 5~8말, 빨간색 염료인 홍화는 근당 쌀 10~11말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 이 때문에 세종 때는 사간원이 사치를 막는다는 구실로 왕실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은 이 색깔의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침방 상궁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왕과 왕비가 옷을 편하게 입도록 해주며 잘 때는 평안하게 자도록 옷과 이부자리를 만들던 곳인 침방의 나인들을 맡아서 관리하는 책임을 가진 상궁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왕과 왕비의 곁에서 옷 매무새를 손질해주고 옷을 입혀주는 등의 일을 하던 이들이 바로 침방 상궁들이다.
조선시대에 궁중이 아닌 곳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을 통칭해 ‘침모’라고 불렀다. 풀어쓰자면 “남의 집에 속해서 바느질을 하고, 일정한 품삯을 받는 여자”라는 뜻이다. 지금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예술가이자 또 성공한 사업가로서 크게 각광받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사농공상’이라는 조선의 사회제도 때문에 전문 직업의 개념은 고사하고, 계급적으로 멸시를 받는 이들이 바로 침모들이었다.
신을 만들던 이들의 직업은 따로 ‘갖바치’라는 이름을 두고 불렀다. 이들 직업은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에 자주 소환되고 있는데, 가령 홍명희의 <임꺽정>, 영화 <황진이> 등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 직업을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갖바치란 한 마디로 가죽으로 신을 만들던 사람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 목이 있는 신발은 ‘화’라고 불렸고, 목이 없는 신발은 ‘혜’라고 불렀는데 화혜장은 화와 혜를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이었다. 당시로서는 천대받았을지 몰라도 이들은 모두 그 당시에나 지금에나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인재들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유명 갖바치 중에 황해봉씨 일가가 그 재능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황해봉씨의 집안은 대대로 갖바치였다. 그의 할아버지 황한갑옹은 1973년 무형문화재 37호 화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았고 2003년에는 황해봉씨가 무형문화재 11호 화혜장으로 지정받아 가업을 인정받게 되었다. 황해봉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의 평상화를 만들었으며, 고조부와 증조부는 순종 혹은 철종 연간에서 신을 짓던 사람이었다고 기록상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의 본적은 인사동인데, 궁궐과 가까운 이곳에서 장인들이 살며 왕의 신발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에 전통 화혜는 특별한 날의 의례용 신발로만 쓰이고 있다. 폐백에 남자는 목화, 여자는 당혜나 수혜를 신고 한복 파티에는 태사혜를 신는 것이 요즘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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